추리 명작 코미조 세이시 작가의 여왕벌

코미조 세이시의 여왕벌

어렸을 때 부터 추리 소설을 좋아했었습니다. 주로 영미쪽 추리 소설만 읽어 오다 반복되는 비슷비슷한 분위기의 추리 소설에 지칠 때쯤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에도가와 란포의 ‘음울한 짐승’과 ‘외딴 섬의 악마’를 읽고 일본 추리소설의 독특한 분위기에 반해서 읽게 된 책이 바로 ‘혼징 살인사건’이었습니다. 표지가 이상하긴 했지만 나름 논리적이고 약간은 애수에 찬 듯한 독특한 분위기(왠지 스즈코에 관한 마지막 문장이 뭔가 아련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요)로 무장한 긴다이치 코스케를 처음 만나서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리고 동서 추리문고 중 양날개에 붙어있는 출간 예정작 중 옥문도와 팔묘촌을 보면서 얼른 나오길 바라고 있었는데 정작 동서미스터리북스에서는 159권 야성의 증명을 끝으로 더 이상 책이 나오지 않고(최근에야 160권 허무에의 공물(제물)이 나왔지요) 시공사에서 옥문도가 발간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표지도 아름답고, 번역도 괜찮고, 더군다나 매년 여름마다 한 권씩 나오는게 어찌나 반가운지요. 그래서 원래 옥문도와 팔묘촌만 알고 있었다가 새로 나올 때 마다 한 권씩 구매하다 보니 시공사에서 나온 책만 벌써 일곱 권이 되었네요. 일관성 있는 통일된 독특한 분위기의 표지가 볼 때마다 뿌듯한 느낌을 줍니다.

여왕벌

여왕벌‘은 국내에 소개된 8번째 긴다이치 코스케의 소설로 팔묘촌의 해설에 나오는 작품 순서에 따르면 ‘이누가미 일족’과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불다’의 중간에 발표된 책입니다. 국내에 발간된 책들을 실제 출간 순서대로 정렬해 보면 ‘혼징 살인사건 → 옥문도 → 밤산책 → 팔묘촌 → 이누가미 일족 → 여왕벌 →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불다 → 악마의 공놀이 노래’가 됩니다. (조금 아쉬운게 발표 순서대로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르센 뤼팽 전집을 순서대로 읽었을 때 앞뒤가 연결되는 부분이 좋았거든요. 하지만 아쉬움일 뿐이지 이렇게라도 출간되는 게 기쁘기만 합니다 ^^;)

줄거리 정리

간락한 줄거리를 보면 월금도에 절세 미인인 고토에가 섬에 놀러 온 청년과 사랑에 빠져 ‘도모코’ 라는 딸을 낳습니다. 하지만 도모코의 아버지는 도모코가 태어나기도 전에 박쥐를 보았다는 이상한 말을 남긴 채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고, 도모코의 어머니, 고토에 또한 도모코가 어릴 적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 도모코는 할머니 마키와 고토에의 가정교사이자 도모코의 가정교사까지 계속하고 있는 가미오 히데코와 함께 월금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18세가 되면 도쿄에 있는 양부(돌아가신 도모코 아버지의 친구인 다이도지 긴조)의 집으로 가서 살게 되는데 이 때 18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다이도지 긴조에게 협박장이 옵니다. 19년 전 도모코 아버지의 죽음이 단순한 변사가 아닌 살인사건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그녀가 도쿄에 오면 불행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도모코가 월금도에서 나오지 못하게 위협하는 협박장이 도착합니다. 이 때부터 긴다이치 코스케는 협박장과 관련하여 도모코의 호송 및 과거 사건 재조사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사건에 휘말립니다.(이 협박장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여왕벌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녀는 여왕벌이다. 접근하는 남자들을 차례차례 죽음에 이르게 할 운명이다’) 도쿄에 오기전 잠시 머문 여관에서 정원사와 정혼자 중 한 명이 살해된 채 발견되고, 또한 도쿄에 온 이후 가부키 극장에서도 또 다른 정혼자가 살해 됩니다. (물론 이 중간에 긴다이치 코스케 살인 미수 사건도 있네요.)

현 세계의 연쇄 살인 사건과 과거 도모코의 아버지 살인 사건을 동시에 해결하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능력은 역시나 대단하지만, 팔묘촌에 이어 이번에도 또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 라는 명언이 나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물론 밤 산책처럼 범인의 범죄를 사전에 막는 멋진 모습도 있지만, 역시나 이런 장면들 때문에 긴다이치 코스케의 악명이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야기 재능이랄까 이런 것 덕분에 정말 술술 잘 읽히고 뒷 부분이 궁금하여 계속 읽게 됐습니다. 그 때 뒷 부분이 너무 궁금해서 날 밤을 샐 정도로 집중해서 보았답니다.

작품에서 느낀 아쉬운 점

19년 전 사건의 진실과 박쥐의 정체 이런 장치들이 계속 마음을 졸이며 볼 수 있게 해 주었고, 거기에 밀실 트릭도 괜찮았고요. 계속 긴장되는 내용이라 중간에 끊을 수 없이 계속 보게 되었습니다. 다만 얼핏 암호 트릭이 나오는가 싶었는데 그런 것 없이 그냥 긴다이치 코스케가 해독했다라고만 나오는 부분은 좀 아쉬웠습니다. 2전 동화나 춤추는 인형과 같은 작품처럼 뭔가 그럴듯한 암호가 나오는가 기대를 했었거든요

총평

그래도 다 읽고 나서 긴다이치 코스케가 나오는 책은 기본적으로 재미가 보장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스마트폰 구입으로 출퇴근 시간에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을 익히느라(가지고 노느라) 못 읽고 있다가 지난 주말 동해로 여행 갈 때 고속버스 안에서 읽었는데 꽤 긴 책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다 읽었더라고요. 이제 또 다시 지난 겨울 “밤 산책”과 같이 올 겨울에 “세 개의 수탑”이 발간되기만을 기다려야겠습니다. 아무튼 즐겁게 본 소설 중 하나로 오래도록 기억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