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철수맨이 나타났다

“해가 뉘역뉘역 지고 전봇대 가로등 불 빛 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으슥한 골목길, 아리따운 아가씨가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런데 생긴 모습 그 자체가 나 불량배요라고 이마에 써 붙인 것 같은 남자 세 명이 한쪽 구석에서 툭 튀어나오더니 아가씨를 둘러싸고는 역시 불량배스러운 말투로 협박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아가씨를 가로등 불 빛조차 닿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간다. 절대 절명의 순간, 그들 앞에 역시나 나 영웅이요 하고 이마에 써 붙인 것 같은 멋진 남자가 짠 하고 나타나 불량배들을 한방에 때려 눕혀 버리고는 아가씨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그러나 그 남자를 결코 잊지 못하던 아가씨는 수소문 끝에 결국 그를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어린 시절 꿈꿔온 히어로

  사춘기 시절 남자들이라면 한번쯤 꿈꿔봤던 그런 이야기일테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했는가? 껄렁껄렁한 동네 불량배 형들의 위협에, 이소룡의 멋진 액션을 보며 그렇게 따라 연습했건만, 태권도장에서 그렇게 열심히 발길질을 연습했건만, 두 손과 두 발은 마치 족쇄라도 채워놓은 것처럼 도대체 움직일 줄을 모르고 얼굴 한번 제대로 못 쳐다보고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어 바치고는 “그거 참고서 살 돈인데….”라고 쥐죽은 듯한 목소리로 울먹이던 것이 바로 현실이 아니었던가. 아니면 어디선가 멋진 영웅이 나타나 저 못된 무리들을 한 방에 날려버려 주기를, 아니면 좀 더 현실적인 생각으로 지나가던 선생님이나 동네 아저씨라도 와서 구해주길 바라지만 언제나 꿈은 현실을 무참히 배반하는 법, 영웅은 TV나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뿐 절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만 다시 한번 깨닫고 아픈 결말로 끝을 맺는다. 제1회 대한민국 문학&영화 콘텐츠 대전 청소년 소설 부문 수상작인 김민서의 “철수맨이 나타났다”(살림Friends, 2010년 6월)은 이처럼 누구나 어린 시절 꿈꿔본 멋진 영웅과 그의 정체를 밝히려는 청소년들의 유쾌하고 즐거운 모험담을 재밌게 그린 소설이다.

철수맨이 나타났다 책

전반적인 줄거리

수도권의 인근 개발 신도시에는 그 도시 사람들만 아는 슈퍼히어로가 있다. 누군가가 위험에 빠지면 바람처럼 홀연히 나타나 그들을 구해주고는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영웅, “철수맨”이 바로 그다. 평범한 옷차림에 귀여운 남자아이 가면을 쓰고 나타나 악당을 물리치는 그는 딱히 그 영웅을 지칭할 고유명사가 없자 대한민국의 대표적 남성 이름인 ‘철수’에 히어로들만의 특권 명사인 ‘맨’을 갖다 붙여 ‘철수맨’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 영웅은 공권력도 해결하지 못한 연쇄살인범을 붙잡아 경찰에 넘기는 대활약을 펼치고는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그로부터 십 여년의 세월이 흘러 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졌을 무렵, 철수맨이 다시 나타난다. 철수맨을 눈 앞에서 목격한 영서중학교 3학년인 희주는 그의 가방에서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영어참고서를 발견하고는 그가 바로 같은 학교 같은 학년 학생임을 알게 되고,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지은과 유채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는다. 철수맨의 정체를 직접 밝혀내기로 결심한 그녀들은 철수맨으로 의심되는 세 명의 동급생으로 현우, 민혁, 윤주를 지목하고는 그들을 미행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현우, 민혁이 숨기고 있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고, 다섯 명은 비밀을 같이 공유하게 되면서 친구가 되고 마을 인근 계곡으로 야유회를 가게 된다. 거기에서 그들은 희대의 탈옥범을 만나게 되고 마지막 남은 철수맨 후보인 윤주가 탈옥범과 싸우는 친구들을 발견하고 합류하여 일대 결투를 벌이지만 결국 탈옥범에게 붙잡혀 버리고 만다. 윤주는 탈옥범에게 자신들을 풀어달라고 어설픈 설득을 해보지만 오히려 탈옥범은 그런 윤주에게 권총을 겨누고 마침내 방아쇠를 당긴다.

  신비의 영웅 등장과 멋진 활약, 감추고 싶었던 비밀을 서로 공유하면서 싹트는 중학교 3학년 청소년들의 우정과 풋풋한 사랑, 그리고 아이들 힘으로는 넘어서기 힘든 절대 강자이자 악인인 탈옥범과 대결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발한 요소들을 두루 두루 갖춘 이 책은 영웅에 대한 동경을 꿈꾸는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했던 공상들을 수없이 해봤던 어른인 내가 읽어도 도대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손에서 잡은 책을 놓지 못하고 내처 읽게 만드는 발군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 책에 삽입되어 있는 순정만화 풍의 만화가 김주리 만화 그림들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이 책이 만화,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원소스 멀티유저”로서의 가능성을 훌륭히 보여준다.

작품 감상 후기

결국 철수맨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 영웅은 그 정체가 낱낱이 공개되는 것보다는 감춰져 있을 때 더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 나를 지켜줄 영웅이 내 학교 친구 중에, 내 손이 닿는 바로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 재밌는 상상은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하는 6명의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의지하고 기댈만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들만의 영웅을 꿈꿔보는 것이 얼마나 재밌고 신나는 상상인지를, 때로는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큰 희망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유치할 수 도 있는 이런 영웅담이 따분하기만 하고 심각한 순수 문학보다도 더한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해준 재밌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