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 쌍두의 악마 – 아리스가와 아리스 

쌍두의 악마는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표 작가 중 하나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입니다. 작가의 두 개의 시리즈 중 하나인 학생 아리스 시리즈로, 그간 읽어왔던 작가의 작품들 중 가장 긴, 800여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이기도 합니다.

전작들과 유사한 연쇄살인극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전작 설정과 유사한, 신본격 작가다운 고전적인 설정과 전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시리즈 작품답더군요. 대표적인 것이 시골 마을의 폐쇄적 공동체와 이 공동체가 천재지변으로 고립된다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라는 것이겠죠. 그리고 연쇄살인극이라는 것도 전작들과 유사하고요.

그런데 그동안 예닐곱편의 작품을 읽어온 것에 따르면,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공정한 단서 제공과 합리적인 추리라는 장점과 작위적인 설정이라는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작가로 보이는데 이 작품 역시 장단점이 그대로였습니다.

쌍두의 악마

쌍두의 악마에서 아쉬운 점

단점부터 이야기하자면, 고립된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작중 설정부터가 억지스러워요. 특히나 몇몇 한정된 선택받은 사람들로만 구성된 외딴 마을의 예술가 공동체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죠. 예술가들이 이런 촌구석에 처박혀서 버틴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지나칠 정도로 “고립”에 집착하는 모습은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네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사실 단점 쪽이 아니라 대표작이라고 불릴만큼 추리적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사라 마을 – 나쓰모리 마을 두 개로 나뉘어져 전개되는 방식은 상당히 재미있고, 이렇게 두개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사건이 결국 하나로 엮인다는 결말도 굉장히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네요. 사건도 모두 3건이나 등장해서 대장편다운 풍성함을 전해주고요. 그러나 디테일에 있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더라고요.

추리적인 결함

먼저 첫번째 사건은 범행이 작위적이었고 추리적으로도 결함이 많아 보였습니다.
첫째로 향수를 뿌릴 수 있는 사람이 야기사와 뿐이었다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졌어요. 어차피 우산 안이라면 접혀져 있을때 향기가 나지 않아서 은폐가 가능했을텐데 말이죠.

동굴 안에서의 살인 방법

두번째로 향수를 뿌리는 것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구태여 동굴 안에서 살해할 필요가 정말로 있었는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작중 설명되듯 그냥 동굴 입구에서 살해해도 되잖아요. 입구가 2개라서 어디서 나올지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죠. 향기에 의지해서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누군가를 미행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가능하더라도 피해자에게 발각될 위험성이 너무 높아요. 그러느니 차라리 50% 확률로 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작위적 장치 설정

세번째로 계약에 따라 혐의를 벗겨주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 설정도 무리수였습니다. 여자 힘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라는 것은 가정일 뿐 현실적인 단서가 되기는 어렵죠. 확고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 것이 훨씬 낫죠. 작위적인 설정의 집합인 범행현장의 묘사는 만화와 같다는 느낌만 전해줄 뿐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증거로 귀를 잘라낸다는 발상도 썩 와닿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시체를 강물에 던져버렸으면 모든 것이 깔끔했을텐데 이래서야 범행을 위한 범행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죠… “계약서”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면 “귀”는 무가치하며 외려 범인에게는 불리한 증거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아이하라 살인사건 총평

두번째 사건인 사진작가 아이하라 살인사건은 깔끔했습니다. 외려 저도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을 만큼 너무 간단하고 명쾌한게 문제였어요. 솔직히 추리적으로는 재미가 떨어지는 편이니까요. 핵심 단서에 대한 정보제공이 너무나 공정한 탓에 용의자의 직업만 가지고도 범인을 특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로키의 팔레 이데알 이야기도 너무 많이 나와서 뭔가 사건에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하게 만들거든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트릭이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과 동일한 트릭이라 신선함이 떨어지더군요. 그나마도 중간과정을 너무 대충대충 넘기고 있기도 하고요.
동기면에서도 오노야 당연히 누구나 죽이고 싶어하는 인물이라 열외이지만 (종유동에 벽화 따위나 그리는 놈은 죽어도 싸지) 야기사와의 살의는 살인 말고라도 여러가지 방법 – 돈이나 필름을 회수하거나 하는 방법 – 이 있었기에 쉽사리 납득할 수 없었고 세번째 살인 역시 무로키가 체포된다면 불필요한 살인이기에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어차피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고립된 기사라 마을에서 한정된 인물들 대상으로 범인이 결국 밝혀졌을테고 말이죠.

음악가 야기사와 살인사건 총평

그래도 세번째 사건인 음악가 야기사와 살인사건은 주요 단서가 가장 명쾌하고 설득력 넘치게 짜여진, 잘 만들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트릭이라기 보다는 왜 X가 범인인가? 에 대한 설명이 핵심이지만 굉장히 합리적이고 깔끔하게 전개되고 있거든요. 구태여 변명하려면 변명할 수 있는 단서이기는 하나 고전적이며 본격 추리소설같은 느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제일 마음에 드네요.

결론

결론부터 내리자면 공정한 단서 제공과 본격 추리소설다운 지적인 재미는 일품이지만 하나의 장편으로서의 완성도는 그에 미치지는 못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벌려 놓은 것에 비하면 알맹이는 빈약한 편이니까요. 엄청나게 긴 분량 역시 감점 요소였습니다. 차라리 조금 더 짧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현대 사회에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물을 만들고자 노력한 작가의 노고에는 경의를 표합니다만 왜 이 작품이 대표작으로 인정받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제 생각에는 작가가 트릭과 추리적인 발상에 비하면 소설가로서의 글 쓰는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가 조금은 더 나아 보이네요.